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작은 도시, 낡은 서민 아파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꽃 장식 모자부터 화사한 의상까지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은 엉뚱한 캐릭터다 미자는 어느 날 동네 문화원에서 우연히 ‘시’ 강좌를 수강하게 되며 난생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다. 시상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을 주시하며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미자. 지금까지 봐왔던 모든 것들이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아 소녀처럼 설레 인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찾아오면서 세상이 자신의 생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토렌트왈 <시>는 2010년 국내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연출작이며, 제63회 칸토렌트왈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토렌트왈는 65세 여성 미자를 통해 시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부조리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전한다.

토렌트왈는 강가에서 놀고 있던 어린 아이들이 강물에 떠내려온 소녀 희진의 시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자는 병원에서 나와 희진의 엄마가 넋이 나간 모습을 우연히 마주한다. 미자는 성폭행으로 자살한 소녀 희진의 이야기를 자신이 간병인으로 일하는 집의 슈퍼 여주인에게 건내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미자는 소녀 희진의 성폭행에 가담한 중학교 손자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들과 피해자와의 합의금을 마련하여 성폭행 사건을 무마하려는 것에만 몰두하는 학교와 가해자 부모들의 모습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소녀 희진의 삶의 흔적을 바라본다.

시 수업을 듣는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일상 속에 시상은 어디에서든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자는 희진의 죽음을 추모하는 성당, 성폭행을 당한 학교 과학실, 희진이 살았던 집에서 마주한 사진들을 찬찬히 관찰한다.

희진의 사진을 식탁에 올려놓고,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일을 물어도 미자의 손자는 대답하지 않고 웃고 떠들며 자신의 일상을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살아간다.

미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뉘우치지 않는 손자의 몸을 단정히 해준 후 밤에 손자와 베드민턴을 치던 미자는 자신이 고발한 손자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본다. 집으로 돌아온 미자는 방에서 아름다운 생을 끝내 살아가지 못한 소녀 희진이 되어 시를 써내려간다.

미자는 ‘아네스의 노래’는 제목의 시를 통해 소녀 희진의 고통을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써내려가고, 미자의 나레이션은 소녀 희진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움을 짓밟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소녀의 피어나지 못한 생은 시가 되어 날아가고, 소녀 희진이 세상을 향해 돌아보는 얼굴과 희진이 죽은 검은 강물을 비추는 토렌트왈의 엔딩은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시를 쓰겠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시 수업 선생님의 대사처럼 인간이 죄를 마주하고 합당한 처벌 뿐만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가 시들면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눈부신 빛으로

머리맡에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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