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토렌트지만 이렇게 늦게 쓴 것(벌써 중화권 토렌트 리뷰 7편 짝짝~!) 에는 이유가 있다. 4월 1일에 이 글을 올고 싶었다. 장국영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알고 있을 바로 그날이다. 사실 나는 장국영이 살아있을 때는 그에 대해 몰랐다. 그 사람이 죽고 한참 뒤에야 그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날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는 게 좀 웃기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사라진 사람이 남겨놓은 흔적만 보고 그를 좋아하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가 남긴 발자국만 따라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걷고 있는 기분. 길의 끝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길을 걷는다. 그가 남기고 싶었던 모습을 보고, 그가 표현하고 싶었던 표정과 마음을 보며 장국영을 사랑하고 있다. 그 길의 첫 시작! 잘 알지도 못했던 장국영을 사랑하게 만든 토렌트, <패왕별희>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에도 4월을 맞아 토렌트는 재개봉 되었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이란 이름이며 171분 무삭제판이다. 경극의 화려한 분장과 음악은 토렌트관에서 보면 더 웅장하게 느낄 수 있으니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이번 극장 관람 기회를 꼭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저도 당연히 보러 가야지! 작년에 극장에서 세 번, 집에서 두 번 더 봤는데 올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보러갈거다.

  • 토렌트 리뷰라 당연히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렌트 안 보신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 이미지 출처 : 구글, 텀블러, 직접 찍은 사진, 그 외 출처 표기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감독
천카이거
출연
장국영, 공리, 장풍의
개봉
1993.12.24. / 2017.03.30. 재개봉 / 2020.05.01. 재개봉 / 2021.03.31. 재개봉

이 장면은 토렌트 <아비정전> 속 장국영의 얼굴.

2003년, 장국영이 죽던 날. 뉴스에서는 하루 종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직 어려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 나는 대체 저 사람이 누구길래 사람들이 이러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우리 엄마는 <패왕별희>를 보면 저 사람이 왜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다 했다. 토렌트 하나로 이유를 알게 된다고? 말도 안 된다며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20년, <패왕별희>의 재개봉 당시 나는 엄마와 함께 극장으로 갔다. 그냥 엄마가 좋아하는 토렌트니까 같이 보러 가자!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토렌트를 다 보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토렌트가 있는데 내가 이걸 여태까지 이걸 안 보고 살았다는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미지 출처 : 조이앤시네마(http://naver.me/5YPHIGaq)

이런 토렌트를 보고 나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1. 아예 이 토렌트를 모르고 살았어야 한다
  2.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이 토렌트를 봤어야 한다

감정이 너무 요동쳐 감당하기 버거워 모르고 살 걸 하고 후회하다가도 이제서야 이런 토렌트를 본 것에 대한 후회 또한 만만치 않다. 지금의 나는 그 사람을 다 알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끝까지 그는 내 이름을 모를 테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오늘 나는 마침표가 없는 문장을 사랑하게 되었다.

  • <패왕별희> 보고 온 날 메모장에 적어둔 감상문

〈오늘 나는 마침표가 없는 문장을 사랑하게 되었다.〉

미친 거 아니야 과거의 나 왜 이렇게 멋있는 문장을 썼지 혹시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먼저 쓴 문장이라면 제가 표절한 건 아니고 그냥 혼자 일기 쓴 건데 우연히 겹친 거니 남겨주시면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국영에 대한 내 마음은 아직도 저 문장 한 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국영은 내가 사랑한 마침표 없는 문장이다.

개인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역사가 된다. 결국 개인이 없다면 사회와 역사도 없다. 사회와 역사는 한 개인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한 개인을 영원히 파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토렌트는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슬프다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존재했던 어떤 삶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의 삶이 그냥 자기 마음먹은 대로만 될 수는 없다. 개인의 삶은 결국 사회의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내내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사회 속에 살았기 때문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것 또한 그런 사회에 살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생은 개인이 선택하는 대로 바꿀 수 있기도 하지만 한계 또한 존재한다. 그 한계는 사회가 만든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산다.

토렌트는 데이의 어린 시절부터 그 끝까지 천천히 되짚어간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관통한 한 인간의 삶. 데이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경극 배우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손가락이 여섯 개였던 데이를 입소시키기 위해 어머니는 무자비하게 그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낸다. 그것부터가 이 토렌트의 결말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 데이가 여섯 개로 쥐고 살고 싶었던 삶을 사는 내내 누군가가 그의 삶을 억지로 다섯 개만 쥐고 살라고 강요할 것이라는 복선.

개인적으로 아이였을 때의 데이 역할을 한 아역배우들도 너무 좋아서 정보를 찾고 싶었는데 오래된 토렌트이고 하다 보니 그 자료가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어떤 어른으로 자라났던 그냥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초반부터 토렌트에 확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장국영이 어릴 땐 저런 눈과 저런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

혹독한 교육생 시절을 넘어 각각 별희와 패왕이 된 데이와 샬루. 처음 토렌트를 봤을 땐 나도 데이가 샬루를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토렌트를 보면 볼수록 데이는 데이로서 샬루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별희가 되어 별희의 마음으로 패왕을 사랑한 것 같다. 데이는 자신의 삶이나 정체성 같은 것이 확립되기전부터 별희로 사는 방법만 배웠기에, 데이는 데이로 성장한 적 없고 별희로 자라났다. 슬프게도 별희나 패왕 모두 혼자서는 별 의미가 없는 존재다. 패왕이 있어야 별희가 있고, 별희가 있어야 패왕이 있다.

똑같이 어렸을때의 데이와 샬루를 보면 두 사람은 그때부터 달랐다. 데이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을 그 어린 시절에도 샬루는 무언가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성향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걸 촌스럽게 샬루는 남자다웠고 데이는 여성스러웠다 이런 고지식한 말로 표현하고 싶진 않다. 다만 데이는 아직 혼란스러웠고 샬루는 좀 더 확실했을 뿐이다. 샬루는 패왕이 되기전부터 자신이 샬루라는걸 알고 있었고 샬루로 사는 법도 알고 있었다. 데이는 자신이 데이라는걸 알기 전에 별희가 되었을 뿐이다. 그 작은 차이가 두 사람의 삶을 갈라놓았다.

무대위에서는 늘 함께 같은곳, 객석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서로 다른 곳을 본다. 무대 위에서 같은것을 바라보고 있지만, 무대 밖에서는 자신과 다른 것을 보려 하는 샬루가 데이는 원망스럽다. 비록 내가 경극을 해본건 아니지만 나도 이런 데이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같은 것을 꿈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걸 꿈꾸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을때. 나를 두고 다른 꿈을 꾸러 가려는 그 사람을 원망했지만 결국엔 그 사람과 함께 그냥 계속 여기에 있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되더라. 앞서 나가려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만 했다. 너는 왜 여기에 머물러있으려고 해? 다들 벗어나는데 왜 너만 벗어나질 못해. 왜 너만 그대로야. 데이가 샬루에게 가진 집착 아닌 집착은 결국 자기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별희가 아닌 데이로서의 삶이 그에겐 어색하고 낯선 것이었을게 분명하다. 결국 어린 시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성숙이 그의 평생을 좌우한 셈이다. 그때 했어야할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상처만 입은채로 어린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데이는. 같은 처지인 줄 알았던 샬루의 성장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미성숙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데이가 연기하는 별희는 그와 다르다. 별희는 덜 자란 데이가 유일하게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미성숙한 데이의 탈출구, 숨통과도 같은 존재. 별희가 될 수 없는 데이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걸 데이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을것이다. 데이는 매일 짙은 화장으로 자신의 맨 얼굴을 가려왔을것이다. 가장 감추고 싶은건 어린 데이의 얼굴을 그대로 갖고 있는 자신이었을테니까.

공리…

퀸카…

처음 토렌트를 봤을 때는 내가 너무 데이의 삶에 몰입하여 데이의 삶을 방해한다고 느꼈었다. 주샨이 없었다면 데이와 샬루는 계속 경극 배우를 하며 무난하게 지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토렌트를 다시 보니 데이의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주샨의 마음도 너무나 이해가 가는 거야. 초반에 내가 너무 데이의 시각으로 주샨을 봤던 거였다. 주샨은 그냥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두 번 만에야 깨달았다.

특이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과 반대되는 평범한 사람. 그러나 그 삶은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서 굴러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주샨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질풍노도 속인 토렌트 속 세상에서 데이를 아무런 댓가나 욕심 없이 따뜻하게 안아준 유일한 사람은 주샨밖에 없다. 나는 늘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장국영을 저렇게 안아주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의 후회 같은 게 눈에 보여서 그런 걸까. 저 장면에서는 신기하게도 대리만족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그렇게 꼭 안아주는 주샨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마지막 표정이 정말로 잊혀지질 않는다. 평생을 인간 맹글어가며 열심히 함께 살아온 남편이 자신을 부정하던 그 순간. 그때 주샨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 주샨의 얼굴과 표정 그대로였다. 그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이 갖고 있는 모든 감정을 전부 알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장면. 왜 공리라는 배우가 유명한지 누군가 묻는다면 이 장면으로 대답을 대신할 것 같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데이가 어떻게 살았는지 토렌트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저 데이와 샬루가 다시 만나 예전의 그 순간을 재연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데이도 데이로 살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을것이다. 그러나 결국 데이는 별희의 삶을 꿈꾸며 그녀를 따라 죽는다. 샬루는 몇 번이나 데이의 이름를 부르다 마지막에 그의 아명을 따라부른다. 그 순간에 나는 아 하고 깨달았다.

샬루도 데이와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지 않았었구나.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거였다. 어릴때 목소리 하나 좀 컸다는게 어른이라는 증거라면 그것도 이상한거지. 샬루는 어린 그때에서 한 뼘도 자라지 않았지만 그저 어른인척 한 것 뿐이었다. 미성숙한 데이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하며 자신을 속였을 뿐이다. 마지막 끝에 다 와서야 데이의 아명을 부른다. 질풍노도의 일을 겪었지만 결국 샬루도 아직 속은 어린애라는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들과 하나 다를 것 없이.

패왕과 별희의 사랑 이야기, 데이의 경극에 대한 열정과 샬루를 향한 사랑 그리고 주샨까지. 모두가 다 아는 방향으로 글을 쓰면 너무 뻔한 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뼘도 자라지 못한 어른들을 보는 시선으로 글을 적어보았다. 이게 평소에 내가 패왕별희를 보는 시선이기도 하고. 어른인척 했지만 사실은 하나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애들. 그런데 애들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더라? 멀쩡한 자식을 버리고 가게 만든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가 나서 아이들을 죽여버렸다. 개인은 결국 다수 앞에서 무력해진다. 아무런 힘이 없는 개인은 결국 잊혀질것이고 역사만이 기억에 남아 우리가 없는 지구를 떠돌아 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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