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방학 새로운 아이가 이사를 온다.

이름은 ‘미카엘’(조 허란 분), 열 살 남자아이다.

짧은 갈색머리에 푸른 눈동자, 콧등 위의 옅은 주근깨, 입매가 단정하고 턱보조개가 있다.

입술 한쪽 끝이 살짝 올라가는 미소를 종종 짓는다.

헐렁한 티셔츠에 바지를 입은 몸은 깡마르고 팔다리는 가늘고 길다.

미카엘은 축구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겨루기게임도 잘하고 싸움도 잘한다.

게다가 리사가 화장을 해준다는 제안에도 순순히 응해주는 아이다.

그런 미카엘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여자라는 것! 진짜 이름은 ‘로레’다.

아빠에게는 아직 응석을 부리는 딸이고, 엄마에게는 의젓한 맏이다. 여동생 잔에게는 잘 놀아주는 좋은 언니다.

나는 세 아이의 시점에서 토렌트비를 해석해보고 싶었다.

하나, 주인공 미카엘이다.

동네 아이들은 미카엘의 외모만으로 자연스럽게 남자아이라고 받아들였다.

남자애들이 여자는 축구에 끼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자라고 구경만 하는 리사가 불만에 차서 투덜거리는 소리도 듣게 된다.

미카엘은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지만, 리사는 그런 미카엘을 바라본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2차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미카엘은 웃통을 벗고 축구경기를 뛰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굳이 나서서 ‘나는 여자야’라고 밝힐 필요는 없었다. 여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축구를 할 수 없다. 리사처럼.

물론 아찔한 위기도 있었다.

강에 수영을 하러 가자는 제안에도 잠시 고민했지만, 총명한 미카엘은 방법을 찾아낸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그날밤 미카엘은 남자아이처럼 보이려고 만들었던 은밀한 그것을 자신의 유치(乳齒)를 보관한 통 속에 고히 넣어둔다.

미카엘은 자연스럽게 팔을 아래로 늘어뜨리지만, 리사는 팔을 가슴 앞으로 엇갈려 잡는다. 웬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다.

리사와의 사이에 흐르는 낯선 긴장감도, 리사의 적극적인 애정공세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결국 리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때문에 ‘여자’라는 비밀이 밝혀지고 거짓말을 한 댓가를 치렀지만, 로레는 한층 성장한다.

여자든 남자든 아이는 그 자신일 뿐이다.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있을 뿐이다.

둘, 리사(진 디슨 분)의 관점이다.

리사의 시선은 언제나 미카엘을 향한다.

열 살 여름방학에 새로 이사온 동갑내기 친구 미카엘은 운동도 잘하지만 미용놀이에 응해줄 정도로 섬세하고, 어린 여동생을 위해 싸울 줄도 안다.

리사는 미카엘을 좋아하는 마음을 적극적인 입맞춤으로 먼저 표현했다.

그런데 그런 미카엘이 여자라니, 푸른 눈동자에 어울리는 파란 원피스를 입고 서 있는 미카엘을 바라보는 리사는 기가막힌 표정이다.

아이들의 성화에 미카엘과의 입맞춤이 징그럽고 역겹다고 화를 냈지만, 리사는 미카엘의 집 앞에서 서성인다.

첫사랑은 이렇게 끝날 것인가.

리사는 묻는다. “네 이름이 뭐니?”

그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셋, 귀여운 잔(말론 예바나 분)이다.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잔이 동생인 것은 행운이야

미용사가 꿈인 여섯 살 잔은 잘 놀아주는 언니 ‘로레’도, 자신을 밀쳐 넘어지게 한 남자아이와 싸워주는 오빠 ‘미카엘’도 다 좋다.

예전 동네의 못된 아이들이 괴롭힐 때마다 자신을 보호해주던 언니 ‘로레’가 오빠 ‘미카엘’이 되어도 잔은 진심으로 지지하고 사랑한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로레를, 미카엘을 지켜주고 싶었다.

잔은 로레의 머리카락도 잘라주고, 거짓말이 들통나 엄마에게 끌려나가는 로레를 도와주려고 팔도 힘껏 당겨준다.

언니든 오빠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이토록 다정하고 좋은데.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것은 어느 시기에 시작되는 걸까?

아마도 태어나기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리라.

대부분의 부모는 뱃 속에 아이가 여자아이면 분홍색을, 남자아이면 파란색으로 방을 꾸며주고 옷을 산다.

그러나 그것은 뿌리깊은 수많은 고정관념의 하나일 뿐이다.

그런 어른들과 환경 속에서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는 왜 축구시합에 끼워주지 않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시대에 태어나 성장한 세대로, 다음 여성 세대는 공정한 기회를 갖기를 기대하며 여권신장을 지지했다.

축구시합에 로레도 뛸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남녀를 떠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의미의 응원이었는데, 정치적 목적 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변질되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비난과 증오, 분노와 악의가 넘친다.

그럼에도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결국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상생하는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순진하게도 좋은 사람들이 힘이 더 세다고 믿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보니 성별에 의한 다름이 있지만, 세상은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으로 나뉠 뿐이더라.

로레도 미카엘도 그 자체만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토렌트비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로레와 잔의 갓 태어난 동생은 분홍도, 파랑도 아닌 노랑 옷을 입고 있다.

이런 섬세한 디테일이 마음에 든다.

전반적으로 셀린 시아미 감독의 연출도 뛰어나지만, 아이들의 연기가 너무 좋은 토렌트비였다.

특히 주인공이 대단했다.

거짓말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감정들 즉 긴장과 불안, 설렘과 기대, 혼란과 슬픔을 고스란히 눈빛과 표정에 담아냈다.

‘조 허란’ 그 이름을 기억해두련다.

‘조허란’, 웬지 한국이름 같아서 더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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