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을 읽고 계속 궁금했던 토렌트 <라스트 레터>. 블랙 이와이, 화이트 이와이, 컬러풀 이와이. 그만의 예술적인 감각으로 여러 분위기의 토렌트를 모두 사랑받게 만든 이와의 슌지의 신작이다. <라스트 레터>는 무거운 주제가 아니다. ‘SNS 시대에서 다시 느끼는 편지 감성’과 ‘첫사랑의 강렬한 추억’이 토렌트를 감싸고 있다. 요샌 스트리밍 사이트들이 잘돼있고, 코로나 때문에도 토렌트관에 갈 생각을 못했는데 겨우 독립토렌트관에서의 마지막 상영으로 보이는 <라스트 레터>를 보고 왔다. 솔직한 후기로 살짝 기대 이하였지만, 이와이 슌지만의 토렌트 감성이 좋았다.

라스트 레터 ラストレター
감독 : 이와이 슌지
일본개봉 : 2021년 1월
출연진 : 마츠 타카코, 히로세 스즈, 모리 나나, 후쿠야마 마사히루, 카미키 류노스케, 안도 히게아키

토렌트는 공기를 가득 채우는 폭포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7월 말 한창 무더운 여름, 아유미(히로세 스즈 분)의 엄마, 미사키의 장례식이 열렸다. ‘오랜 지병을 앓다가 죽었다’고 돼있는 미사키의 죽음이 고등학생인 아유미에게는 어려워보인다. 엄마 미사키의 유서는 아직 열어보지 못했는데.
미사키의 여동생 유리(마츠 타카코 분, 아역 : 모리 나나 분)의 딸이자 아유미의 사촌동생 소요카(모리 나나 분)는 여름방학 동안 아유미 옆에 있고 싶다고 한다. 유리는 기꺼이 허락하고 아유미와 소요카는 외조부모님 댁에서 함께 지내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떠나는 유리에게 아유미는 엄마 미사키 앞으로 왔던 나카타가이 고등학교 동창회 안내장을 건네준다. 유리는 자신이 연락하겠다고 한다.

언니의 부고를 알리려 유리는 직접 동창회에 찾아간다. 미사키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 학생회장이었던 언니 미사키의 존재감은 미사키의 부재 속에서도 강렬했다. 유리가 회장으로 들어서자 미사키의 동창생들이 몰려들면서 ‘미사키’라고 부른다. 결국 무대에 올라서 스피치까지 하게 되는데. 유리는 주위를 둘러보다 오토사카 교시로(후쿠야마 마사히루 분)를 발견한다. 유리의 첫사랑이었던 선배, 오토사카 교시로를.
회장에서는 졸업식 장면 녹음 테이프가 틀어졌고, 미사키의 졸업식 답사가 울려퍼졌다. 유리는 서둘러 나가려던 차에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잠시 멈춘다.

유리의 스피치를 보고 놀랐던 오토사카는 유리를 따라 나왔다. 본의 아니게 언니 미사키인 척을 했던 유리는 뻔뻔함이 덜 장착돼서(?) 처음에는 오토사카에게 경어를 쓴다. 오토사카는 그간의 회포를 풀고 싶어 한 잔 더 하자고 제안하지만 유리는 가봐야 한다고 거절한다. 오토사카가 그럼 번호 교환이라도 하자고 하자 메신저 계정 코드를 보여준다. ‘마마’라고 뜬 유리의 계정을 본 오토사카. 유리는 점점 자연스럽게 본인이 유리임을 숨기고 그저 유부녀가 된 미사키인 척 한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유리가 물어보자 오토사카는 ‘소설가 오토사카 교시로’라고 적혀있는 명함을 내밀었다. 오토사카는 유리에게 소설을 읽었냐고 물어보자 유리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미사키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라고 오토사카는 생각한다.

유리는 만화가 소지로(안노 히데아키 분)와 결혼했다. 남편의 벌이 덕분에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있는데. 만화를 그리느라 바쁜 소지로는 미사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유리와 헤어지자마자 오토사카는 바로 문자를 보냈다.
“널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면 믿어줄래?”
“아줌마를 놀리지 마!”
“내게 너는 영원한 사랑이야.”
목욕을 하고 있는 유리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를 우연히 본 소지로는 크게 분노한다. 문자를 큰 소리로 읽고는 유리가 들어있는 욕조로 폰을 던저버린다. 침수된 폰은 망가졌고, 유리는 오토사카에게 답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명함에 있던 주소로 편지를 쓰게 되는데.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유리는 틈틈이 오토사카에게 편지를 쓴다. 발신지는 적지 않은 채로. 오토사카의 답장을 기대할 순 없지만 첫사랑이었던 오토사카에게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적어 보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는 유리다. 남편이 문자를 오해해서 폰을 망가뜨렸다, 시어머니 보고 오래 머물다 가라고 했다, 만화 소재라고 하면서 큰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이건 나에게 주는 벌일 거야 등등.

유리의 편지를 받은 오토사카는 본인의 문자 때문에 폰이 망가지게 된 유리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답장을 쓰고 싶은 오토사카는 졸업 앨범을 뒤져 미사키의 본가의 주소로 편지를 보내게 된다. 미사키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유리가 아닌 미사키가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미사키의 본가로 도착한 편지는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아유미와 소요카의 손에 들어간다. 죽은 엄마 앞으로 온 편지. 보낸 이는 오토사카 교시로. 편지를 나누어 읽던 아유미와 소요카는 답장을 쓰기로 한다.

아유미와 소요카가 쓴 편지에는 미사키를 어떻게 기억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오토사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나카타가이고등학교로 전학온 일부터 미사키를 알게 된 일, 유리와 있었던 일 등을 써서 편지를 보낸다.
전학을 온 오토사카는 생물부에 들어가고 거기서 유리를 만난다. 유리는 오토사카에 마음이 있지만 괜스레 언니 얘기를 꺼낸다. 언니는 학생회장이라고.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단상에 올라 말하는 미사키를 보고 오토사카는 그녀가 더욱 궁금해진다. 여름에 감기가 유행 중이라 마스크를 쓰고 있던 미사키.
오토사카는 유리에게 미사키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는다. 유리는 그를 집으로 데려와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여주는데, 봐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개울에서 생물 관찰을 하던 날, 미사키가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온다. 유리를 통해 인사를 주고 받게 된 둘. 유리는 마스크를 벗고 인사해야지, 하며 미사키의 마스크를 벗겼고, 그제서야 미사키의 얼굴과 제대로 마주한 오토사카는 그녀의 미모에 감탄한다. 유리는 속마음을 숨기고 ‘언니 예쁘죠?’, ‘러브레터라도 쓰는 게 어때요? 제가 전해줄게요’라고 말한다. 멋쩍어하면서도 러브레터를 쓰게 된 오토사카.

도서실에서 미사키를 보고는 독서를 좋아한다는 둥, 미사키가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고르자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는 둥의 내용을 시작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유리에게 전달한다. 답장을 받진 못했지만 유리의 말을 들어보면 본인의 편지를 읽은 것 같다. 그런데 미사키와 단둘이 있던 때, 편지 읽었냐고 물어보자 미사키는 모르는 눈치다.

유리를 불러 화를 내는 오토사카. 자신을 놀린 것 같아서 매우 언짢은데. 유리는 어제 언니에게 편지를 다 전해줬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편지 한 통을 전해주는데. 오토사카가 미사키의 답장인 줄 알고 허겁지겁 뜯어본 편지에는 ‘선배를 좋아해요. 저와 사귀어 주세요. 도노 유리.’가 적혀있다. 오토사카는 오히려 미안해졌다.

오토사카의 편지를 전부 읽은 미사키는 졸업식을 앞둔 날, 졸업식 답사를 함께 써달라고 부탁한다. 왜 나게에 부탁하냐는 오토사카의 질문에 ‘글 잘 쓰던데’라고 답하는 그녀. 오토사카는 민망해하면서 그녀가 미리 써온 답사의 일부를 수정해준다. 미사키는 글이 완벽해졌다고 느낀다.
너 소설가 해도 되겠는데.
미사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펴지는 졸업식이 끝나고 대학에 진학한 둘은 잠시 간 사귀었다.

한편 현재의 유리는 외출한 시어머니를 찾으러 나섰다가 웬 노년의 남성과 있는 시어머니를 발견한다. 시어머니를 따라 미행을 하다가 시어머니가 그 남성의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게 된다. 시어머니에게 사랑이 찾아왔다고 생각한 유리는 오토사카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시어머니 얘기를 빼곡히 적어 보낸다. 추간판 탈출증으로 병원에 실려갔던 시어머니는 한동안 집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됐고, 유리에게 편지 봉투를 건네며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한다. 본인의 설렘을 이입한 유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주다가 직접 편지를 전달하러 가기로 한다.
거기서는 시어머니가 만나던 남성은 첫사랑 같은 사람이 아닌, 영어 선생님임을 알게 된다. 영작을 하고 첨삭을 받으며 무료함을 달래던 시어머니. 유리는 손을 다쳐서 첨삭 답장을 못 보내고 있던 선생님을 대신하여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빨간 줄을 긋고, 잘못 쓴 단어를 고친다. 시어머니가 느낀 재미를 알 것 같다. 그리고 오토사카의 답장을 받고 싶었던 유리는 그 선생님 댁 주소를 빌려 편지를 쓴다.

두 주소에서 온 편지를 받은 오토사카는 무슨 영문일까 하여 직접 유리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유리가 빌렸던 주소로 찾아가 사실 처음부터 미사키가 아닌 걸 알았다고 말한다. 유리는 당황했지만 이내 속이 시원해진 기분이다. 그래서 미사키는 어디에 있냐는 오토사카의 질문에 유리는 미사키가 죽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자살이었다고. 사람들에게는 오랜 지병 때문에 죽은 걸로 해두었지만, 자살을 왜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결혼을 했었지만 딸 아유미 얼굴에 맞은 흔적이 있었고, 미사키도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그렇게 미사키와 아유미는 미사키의 본가로 돌아가서 지냈다고. 자살 미수도 여러 번 있었다는 얘기도 한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오토사카. <미사키>라는 책으로 작은 상을 타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한 무명의 소설가로 지내고 있다. 미사키의 존재감이 인생에서 옅어지는 일 없이, <미사키>의 환영을 쫓듯 그녀의 이야기를 벗어난 소설은 쓸 수가 없다. 지금 다시 미사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자 하고 있는 와중인데. 첫사랑을 다시 볼 수 없는 데다가 나를 떠난 그녀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을 생각하니 착잡해진다.

한편 유리는 그제서야 오토사카와 재회한 날, 그가 물어봤던 소설을 정체를 알게 됐다. 언니 미사키의 이야기가 담긴 <미사키>라는 소설임을. 유리는 오토사카에게 그 책을 읽고 싶다고 한다. 이미 절판돼서 구할 수 없을 거라던 오토사카는 가방에 들고 다니던 본인의 <미사키>를 준다. 언니 흉내를 내면서 편지를 쓰다보니 언니가 죽어도 생이 연장된 기분이 들었다는 유리는 <미사키>를 받고 기뻐한다.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미사키가 살던 오래된 아파트로 향한 오토사카. 우편함에는 밀린 우편물이 가득하다. 이젠 아무도 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미사키와 이혼한 남편, 아토 요이치(토요카와 에츠시 분)와 함께 살고 있는 사카에(나카야마 미호 분)다. 오토사카가 자기소개를 하자 <미사키>를 꺼내 들고 나와 이거 쓴 작가냐고 물어본다. 아토에게 연락을 해준 사카에는 아토가 있는 술집으로 오토사카를 데려다 준다.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요! 미사키가 죽었다는 말을 전하며 오토사카는 울컥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이지만 우리 대학 학생도 아니었던 정체 모를 아토가 미사키와 결혼했고,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데다가 책임감도 없어보인다. 떳떳하지 못해야 할 아토지만 오토사카는 그의 기운에 당해내지 못한다. <미사키> 이후로 이렇다 할 책을 쓰지도 못한 소설가에게 내 이야기를 쓰라며 비웃는 아토. 미사키의 죽음을 탓하는 오토사카에게 그 이야기에 당신은 여전히 없다고 그의 정곡을 찌른다. 누구보다 특별한 관계였지만,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나카타가이고등학교가 이전하여 곧 건물이 허물어질 거라는 얘기를 유리에게서 들었다. 유리가 학교 사진도 보내줬었다. 오토사카도 학교를 찾았고 먼지가 쌓인 복도, 텅 빈 교실을 보고 만감이 교차한다. 그런데 창문 밖으로 고등학생 시절 미사키와 유리를 쏙 닮은 두 여자 아이가 큰 개와 산책하고 있다. 그녀들을 놓칠까 달려간 오토사카. 아니나 다를까 미사키의 딸 아유미, 유리의 딸 소요카다. 편지 답장을 대신 했다며 고백하는 아이들은 오토사카를 집으로 초대한다. 엄마를 만나주면 좋겠다고.

고등학생 때, 유리를 따라 와본 적 있는 미사키의 본가. 최근 사진이 없어서 대학 때 사진을 썼다는 미사키의 영정사진은 오토사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미사키의 모습이다. 그녀의 집에서 <미사키>를 찾은 오토사카를 보고 아유미는 ‘오토사카 교시로’란 이름을 보자마자 그 소설가 분이란 걸 알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 미사키에게 보낸 편지와 내용이 같다는 것도 안다고.
읽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엄마의 보물이었어요. 저도 여러 번 읽었어요. 엄마에 대한 애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편지였어요.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았을 텐데.
힘들 때도 많았지만 엄마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이 사람이 언젠가 분명……. 분명 이 사람이 엄마를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했더니 왠지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속을 털어놓는 아유미. 그녀의 눈물에 오토사카도 울음을 참을 수 없다.

오토사카를 배웅해주는 아유미와 소요카를, 그때의 미사키와 유리를 카메라에 담아 오토사카는 다시 떠난다.

찍었던 사진은 유리에게 전해주는 오토사카. 오토사카가 건넨 악수에 ‘첫사랑과 손을 잡은’ 기쁨을 순수하게 느끼는 유리. 도쿄로 돌아가는 그에게 <미사키>에 사인을 해줄 것을 부탁한다.

아유미는 엄마의 유서를 꺼내보았다. 거기에는 미사키의 졸업식 답사 원고가, 찢어지고 색이 바랜 채 들어있다.
오늘 우리들은, 졸업식을 맞이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은 우리에게 있어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장래의 꿈이 무엇인지, 목표는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아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생의 선택지가 있겠지요.
이 자리에 있는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인생을 걷게 될 것입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괴로운 일을 겪게 될 때
살아가는 일이 고통이 될 때
분명 우리들은
몇 번이고 이 장소를 떠올릴 것입니다.
자신의 꿈과 가능성이 무한하게 여겨졌던 이 장소를.
모두가 한결같이, 소중하게 빛나고 있었던 이 장소를.
원작소설로 읽고 과연 이와이 슌지가 토렌트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토렌트를 보는 내내 소설을 떠올리느라 ‘어, 다르네?’하는 생각이 심심찮게 들었지만. 원작에 고집하면 안될 테지만 소설에 몰입하는 동안 내 머리에 박혀있는 이미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영상, 배우들의 음성, 세심히 골라진 음악들의 진동은 나의 뇌파를 크게 울렸다. 그리고 영상미도 좋지만 이와이 슌지의 음악적 감각은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과 설정이 다른 건 토렌트라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 바꿀 필요가 있는 부분일 테니 이 아쉬움은 덮어둔다고 해도,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토사카 아역의 카미키 류노스케나 아토 요이치의 토요카와 에츠시의 캐스팅이 그렇다. 카미키 류노스케는 다른 여러 작품에서 봤을 때 순수한 듯 연기에 파워가 있어 좋아하는 배우지만, 이미 20대 후반이고 성인 역할을 많이 봐서 몰입도가 좀 떨어졌달까. 아역 이미지가 강한 히로세 스즈와 친구라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토 요이치는 소설을 읽었을 때는 적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너무 와일드하지 않고 강하면서 호탕한 이미지였는데 토요카와 에츠시는 히로세 스즈의 얼굴을 한 미사키가 혹해서 만날 인물인가 싶었다. 그의 젊을 때 얼굴을 보면 납득이 가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좀 더 딴 데로 흘려보면 일본은 서양 혼혈이 많아서 그런가 늙으면서 역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토렌트를 보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한 컷이 그다지 짧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두 유리, 마츠 타카코 분과 모리 나나의 대사나 표정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져서 과연 이와이 슌지는 어떤 이미지를 생각하고 오케이를 한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도 소설과 토렌트를 모두 보고 그 내용에 집중해서 감상을 해보자면, 변하는 시대가 뺏아가지 못하는 ‘첫사랑’의 추억을 새겨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벼운 채팅에 둘러싸이고 있는 지금, 고르고 고른 단어로 꾹꾹 적은 편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오토사카의 첫사랑 미사키, 유리의 첫사랑 오토사카, 미사키에게도 아마 첫사랑 오토사카. 누군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첫사랑이라고 한다. 오토사카는 미사키와의 시간들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미사키를 잃었다’. 그렇지만 일생을 그녀를 기억하는 데에 쓰는 그의 절절함에서 첫사랑의 진한 향기를 보았다. 그리고 미사키는 결국 죽었지만, 오토사카의 사랑은 딸 아유미에게까지 전해져 그녀에게도 힘이 되었다. 유리에게도 잠시나마 삶의 활력을 주었고.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첫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과하게 미화되면 첫사랑과 결혼하지 않은 부부들에게 악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지만, 그 시절, 그 마음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음은 첫사랑이 주는 엄청난 힘일 것이다.
졸업식 답사 소설 버전
오늘 우리는 졸업을 맞이합니다.
중학생 시절은 우리에게 아마 평생 잊을 수 없는, 둘도 없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장래의 꿈이 뭐냐고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면 저 역시 아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수업이 많은 인생의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는 졸업생 한 명 한 명은 지금까지처럼,
그리고 앞으로
그 누구와도 다른 인생을 걸어갈 겁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괴로울 때, 살아가기 힘들 때
우리는 몇 번이나 이 장소를 떠올릴 겁니다.
자신의 꿈이나 가능성이 아직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이 장소를.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귀하게 빛나던 이 장소를.
졸업생 대표 도노 미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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