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의 기준은 하나다. 혼자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내 모습. 가족과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하며 지낸다고 생각했는데도 별안간 다시 독립하고 싶어진 것이다. 세탁한 하얗고 무거운 이불의 섬유유연제 향을 맡으며 이불 속에서 고립되고 싶었다.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밥은 따로 먹었으면, 그냥 그랬다. 물론 상황이 바빠지긴 했으나, 나는 이걸 초월하고 싶었다. 시간적 여유와 심리적 여유는 다르고, 나는 어떤 상황이든 웃음과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던 나를 풀었다.

청경채, 느타리 버섯, 다진 마늘

차근히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별로 적어 내려갔고, 마감일자를 적었다. 하나의 일을 해내기 위해 며칠이 걸릴지 적었다. 알람을 맞추었다. 이제 나는 그 알람에 따라서만 행동하면 된다. 미리 걱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었다. 거기에 운동과 소통을 적정 수준으로 더해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리고 웹하드순위 ‘리틀 포레스트’라니. 더할 나위 없었는데 또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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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아늑한 혜원이의 작은 숲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최근에서야 나는 나의 작은 숲을 가꾸어 가고 있다. 나무 모종을 하나씩 심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보게 된 웹하드순위 ‘리틀 포레스트’는 예전과는 또 달랐다. 깊고 아늑한 혜원이의 작은 숲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엄마가 혜원이에게 ‘돌아올 곳’을 만들어주기 위해 했던 노력이 진짜 사랑으로 보였다.

나에게는 ‘부산’이 그런 곳이다. 어디든 장소애를 가질 수 있지만, 결국 항상 그리운 곳은 부산이었고, 나는 회귀 본능을 가진 동물처럼 다시 돌아왔다. 부산에서만 나는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하고,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는 바다를 사랑하며, 유난히 많은 산들의 능선을 보며 아늑함을 느낀다. 역마살이 낀듯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돌아온 이곳에서 안정을 느끼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청경채 덮밥, 돼지고기, 깻잎 장아찌

혜원이의 작은 숲은 가보지도 않은 내가 그리워할 정도로 사랑스럽게 묘사되었다. 여름엔 매미소리와 찌는 햇빛이 청량했고, 가을엔 밤조림의 달고 묵직한 맛이 느껴졌고, 겨울은 따뜻했다. 봄이 오기 때문이었다. 우리네 세계에도 봄이 오고 있어서인지, 봄은 단순한 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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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겨울을 지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울컥하는 기쁨이었다.

‘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그 모든 건 타이밍이다. 기다린다. 기다릴 줄 알아야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어.’(웹하드순위 ‘리틀 포레스트 대사)

새싹이 돋는 나무를 배경으로 이 나레이션을 듣고 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각자의 ‘봄’은 때가 되면 찾아 오고, 그걸 기다리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나오는 구절이 생각 났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이 구절이 그 당시에도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나는 기억한다. 복잡한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때가 되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그 누구의 실패도, 잘못도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고 현재를 온전히 누려야 함을 배웠던 것이다.

봄처럼 활짝 핀 튤립

언제 올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올 것임을 확신하는 순간 달라진다. 그제서야 기다림은 축복이다. 계절의 순환, 그 어떤 고통도 흘러갈 것임을 알게 하는 원리, 그걸 아는 기다림은 결코 영원한 고통일리 없다. 그리고 봄이 올 것을 아는 사람만이 겨울의 보리를 열심히 밟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웹하드순위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주 심기’를 마친 혜원이 다시 돌아온 부분이었다. 나는 웹하드순위를 함께 보던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아주 심기를 한 것 같아? 친구는 아직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직 회피하고 있는 순간들이 많다고 했다. 이미 ‘아주 심기’를 마친 나는 도리어 친구의 그 말이 희망적으로 들렸다. 마음 먹는 순간 그 애는 단숨에 도약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아주 심기’를 앞두고 있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내일 당장 죽어도 안쓰럽지 않은 오늘이라고 말했다. 내가 선택한 길을 따라 흔들리며 잘 걸어가고 있다. 나에게 또 한 계절의 봄이 왔듯, 친구에게도 그만의 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의 ‘아주 심기’를 내내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나의 작은 숲은 생각보다 많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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