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이 우연히 만나고 헤어진 여기, 길 잃은 마음의 이야기

<조제> <더 테이블> 그리고 넷플릭스 토렌트 <페르소나> 중 ‘밤을 걷다’를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의 신작 <아무도 없는 곳>을 극장에서 관람하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밤을 걷다’를 보면서 감상적이고 낭만적이라 <페르소나>의 챕터 중에 나랑 가장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그의 최근작인 토렌트 <조제>도 원작이 워낙 압도적이라 그렇지 나름 한지민과 남주혁의 이야기가 꽤 쓸쓸하게 아름다웠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아무도 없는 곳>도 기대를 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토렌트를 떠나서 이미지를 가진 토렌트의 여운에 기대어 토렌트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김종관의 토렌트는 그런 매력이 아닌가 싶거든요. 요란한 홍보 대신에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대사와 어둡고 축축해서 별로일지도 모를 이미지 속 어쩌면 그 안에 오롯하게 담긴 따뜻함을 찾은 과정.

5개의 챕터로 나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등장하는 인물의 순서처럼 미영을 맡은 이지은 혹은 아이유, 그리고 유진을 맡은 윤혜리, 성하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김상호, 바텐더 주은 역의 이주영 그리고 끝엔 창석을 맡은 토렌트의 주인공 연우진의 이야기.

<아무도 없는 곳>의 시작, 미영과 마주하는 창석의 표정이 묘합니다. 대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흡사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능숙하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소설이 싫다는 미영에게 창석은 이야기 하나를 던집니다. 벨보이와 노숙자의 이야기. 그리고 소설을 믿지 않는다는 미영에게 그런 말을 합니다.

“잘 만들어 낸 이야기는 사람들을 진짜로 믿게 해요.”

그래서 나는 이 토렌트 <아무도 없는 곳>이 허구인지 진짜인지 그 진위를 따지고 곱씹으려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믿음은 김종관의 토렌트이니까 가능한 거라 생각을 하고요.

7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창석은 소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가 나왔고 초고를 유학 가기 전 한때같이 일한 후배 유진의 회사에 전했고 오늘은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유진을 만났습니다. 낮술 한 잔과 산책 그리고 함께 담배를 태우며 유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어둡게 내려깔린 화면의 짙은 색에도 담배연기의 희뿌연 재색은 유독 쓸쓸하고 외롭게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한 모금 빨아들일 때 나는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혼잣말처럼 유진의 인도네시아 남자친구와 만남과 헤어짐의 독백이 허공으로 갈라지고.

유독 창석의 걸음이 무겁고 느려 보입니다. 때론 비현실 같은 배경이 그의 걸음과 어둠을 동행하고 유독 외롭게 빛나는 가로등의 오롯한 불빛이 도시의 밤을 외롭게 비추며 낡아 보이는 뎅그러니 박스에 갇힌 공중전화가 사뭇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애처롭고 쓸쓸히 늘 같은 그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오후의 햇살이 내려앉은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에 책을 읽고 있던 창석은 우연히 성하와 마주합니다. 기적을 믿고 싶어 하는 그와 아내의 이야기가 역시나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발그레 상기된 그의 기적에 기댄 웃음은 이윽고 울리는 전화벨에 잠시 멈추고. 그렇게 오랜만에 마주하는 밝은 햇살 같은 하루의 끝이 이내 무겁게 성하의 어깨에 내려앉아 그를 다시 병원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사실 토렌트 <아무도 없는 곳>은 애초 처음부터 줄거리를 신경 쓰지 않고 봤던 거 같아요.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그 짤막한 사람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해석하려 하지 않고 대사들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들으려 했습니다. 배치된 화면의 장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했던 거 같기도 해요. 걷고 걷고 또 걷는 창석의 걸음걸이를 따라 큰 감정의 동요 없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따라 그저 허공으로 사라질 사람들의 독백을 경청했던 거 같아요. 이건 감상이 아니라 어쩌면 음미라고.

그리고 가장 빛나던 바텐더 주은이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하이볼을 마시는 창석이 노트에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쓰고 있는 것을 신기한 듯 주시하며. 하이볼이 바닥난 창석에게 더 주문할 것이 있냐고 묻자 같은 걸로 한잔 더 달라고 겸연쩍은 미소로 오더를 내고.

하이볼을 다시금 제조해 창석에게 전하며 그녀 역시 그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역시나 점처럼 허공으로 흩날려버릴 독백. 하지만 가끔씩 오는 손님들을 보고 그 손님의 이야기로 시를 짓노라 고백하는 주은은 오지 않는 일행을 기다리는 창석에게 과거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사라진 자신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한 잔의 위스키와 창석의 대학시절의 토끼와의 추억을 맞바꾸고 그와 나눴던 순간의 이야기를 시로 녹음을 합니다. 점처럼 사라지지 않도록.

끝은 창석의 이야기. 그가 영국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이유와 그의 여백이 사라진 미소의 슬픔이 공개됩니다. 슬픈 꿈에서 깨어 등만 보이며 걷는 누군가를 따라 좁고 어슴푸레한 골목을 걸어가는 창석의 모습.

그렇게 나는 여전히 토렌트 <아무도 없는 곳>에 나온 그 이야기가 실제인지 소설인지 잘 모르겠어요.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저 그 슬픈 꿈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이어져 창석의 새로운 생의 시작에 발아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기록하지 않으면 점처럼 사라질 나의 하루처럼 글로 쓰고 혹은 데이터로 저장하며 그 하루를 새기고 새기며. 뭐 그리 바쁘게 살았나 싶다가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다고 내 나이 먹는 게 참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나를 보면 사라져간 나의 하루하루를 기록하면 그 무게감에 어쩌면 그래서 그 빨랐던 시간에 내가 어떻게 생을 견디고 버텼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왔던 거 같아요.

정적이고 까무룩 하게 내려앉는데 뭔가 굉장히 또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곱씹고 있네요. 곱씹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런 매력이 아무래도 토렌트 <아무도 없는 곳>의 관람 포인트가 아닌가 싶어요. 이상으로 토렌트 <아무도 없는 곳> 후기를 마칠게요. 찬란한 봄입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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