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뭐 재미있는 영화나 미드없느냐는 친구에게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소개해 준 뒤 계속 밴드 오브 브라더스만큼 재미있는 미드 또 없느냐는 소리를 거의 매번 만날 때마다 듣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선을 다룬 더 퍼시픽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에게 그 10년동안 감히 추천해 주지 않았는데 그건 나도 미처 시청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미국 HBO 채널에서 2001년 방영된 토렌트로 유럽 전선에서 히틀러의 독일을 상대로 싸우는 미국 공수부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배우 톰 행크스가 제작을 맡았다.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한 미군 공수부대의 무용담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이 후속편으로 역시 HBO 채널에서 2010년 3월에 방영이 시작되었고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을 맡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정말 재미있게 시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더 퍼시픽을 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전쟁 무용담 성격의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달리 더 퍼시픽은 전쟁의 참상을 다룬 토렌트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 토렌트를 본 사람마다 멘탈이 터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가미가제만 예를 들더라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어떤 전쟁을 벌였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기 때문에 선뜻 시청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더 퍼시픽을 시청하게 되었다. 아마도 유튜브에서 역사 관련 동영상을 시청하다가 볼 마음이 생겼던 모양이다.

재수 좋은 어떤 놈들은
지금 남태평양으로 떠났다고.
열대 섬에 숙소를 잡고
벌거벗은 원주민 소녀들이랑
야자수 아래 앉아서 코코넛 잘라 주고
플라밍고한테 먹이도 주고 말이지.

위 대사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1화에 등장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태평양 전선의 병사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느냐 하면 코코넛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섬에 쳐박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섬은 숙소로 쓰기에 좋지 못했고 밤이 되면 톳게들이 섬을 뒤덮었고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는 비는 사람을 끝없이 우울하게 만들어 자살하는 병사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모래사장의 톳게를 보며 대화하는 유진과 시드.
유진은 게를 불로 지지려는 시드를 말리지만 시드는 게들에 대해 유감이 많다.
하지만 더 끔찍했던 것은 바로 일본군들이었다.
유럽 전선에서 대항했던 독일군들과의 교전은 그래도 인간대 인간의 전투처럼 보인다면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들은 악마와의 전투, 그것도 한없이 찌질하고 집요한 악마와의 전투처럼 보인다.

이 토렌트는 진작에 사라져버린 전쟁의 낭만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비교적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1화에서 태평양 전장으로 떠나는 레키는 아버지에게 ‘타이프라이터를 못 가져온 게 아쉽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그런 게 왜 토렌트 사이트가 필요하냐고 묻자 ‘낮에는 싸우고 밤에는 글을 쓸까 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을 탓하지 않지만 한동안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작별의 악수를 청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뒤늦게 태평양 전쟁에 참가한 이 토렌트의 실질적 주인공 유진 슬레지는 파부부 섬에 도착해 부대원들과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감상한다.
원작에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를 토렌트에 굳이 등장시킨 이유는 이 영화가 아직 전쟁이 낭만이던 시절을 다루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자를 물리치기 위해 국제 여단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로버트 조던과 스페인 산골 소녀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

하지만 미안하게도 유진은 펠렐리우와 오키나와의 그 어디에서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볼 수 있는 전쟁의 낭만 비슷한 것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