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MCU’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알다시피 ‘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줄임말로, 마블 히어로 무비의 세계관을 뜻하죠.

원작 코믹스에서도 개별 히어로들이 모인 히어로 집단이 주인공 역할을 하는 스토리가 있어요. 히어로 집단 코믹스의 경우, 각자의 서사가 쌓인 인물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활약하니 몰입도는 훨씬 높아지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복잡해졌습니다.

또 개별 히어로 코믹스의 팬들은 해당 히어로를 보기 위해 ‘저스티스 리그’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접하게 되고, 자연스레 다른 히어로의 매력을 발견하죠. 그렇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세계관도, 이야기도, 인물들의 관계도, 독자들의 네트워크도 강화됩니다. 그게 코믹스의 전략이었습니다.

토렌트는 애초에 그런 전략을 실현하기가 힘들다고 여겨졌어요. 제작비, 제작 여건, 시간과 판권의 문제 등 여러 현실적인 제약들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이언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천둥의 신>과 같은 토렌트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마블 스튜디오는 도박을 감행합니다. 각기 다른 토렌트에서 서사를 쌓게 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토르, 네 명의 주인공을 <어벤져스>라는 하나의 토렌트로 합친 것이죠. 각기 다른 네 토렌트가 하나의 이야기로 모여들었고, 다소 산만하고 위험할 수도 있었던 마블 스튜디오의 모험은 놀랍게도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토렌트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무려 20편이 넘는 마블의 이야기, 즉 ‘인피니티 사가(The Infinity Saga)’의 중심에 선 작품인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영웅’과 ‘비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다소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의 마블 히어로들은 비극과 꽤 거리가 멀어 보였어요.

아리스토텔레스
그런 의미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엔딩은 마블의 다른 어떤 토렌트들보다 비극적이고,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비극’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철학자가 있죠.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토스의 구성 요소를 ‘발견’, ‘급전’, ‘파토스(pathos)’의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발견은 깨달음으로서, 주인공이 진실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급전은 목표한 행동의 효과나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파토스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비극을 자아내는 행동, 즉 살인이나 심한 고통, 파괴나 부상을 일으키는 행동입니다.
토렌트 속에서 이 발견과 급전, 파토스를 찾아볼까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언제나 악몽에 시달립니다. ‘어벤져스’ 시리즈 첫 번째 토렌트에서 토니 스타크는 강력한 우주의 적과 맞서 자신을 희생할 각오까지 했어요. 핵무기를 둘러메고 우주 공간까지 나아간 토니 스타크는 거대 우주선을 보았고, 이후 우주의 적들이 지구를 언제 침공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품게 됩니다.

즉 타노스와 그의 군대를 ‘발견’한 것이 그의 악몽을 초래한 것이죠. 토니 스타크는 그러한 악몽을 불식시키기 위해 슈트나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에 골몰해요. 무수히 많은 슈트를 만들고 부수는 행위는 토니 스타크의 ‘파토스’죠.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울트론입니다. 울트론은 토니 스타크가 만든 인공지능이지만 지구를 지키려는 토니 스타크의 의도와는 반대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의지를 지닌 사악한 인공지능으로 발전해버립니다. 타노스라는 존재를 ‘발견’한 토니의 행동이 울트론이라는 ‘급전’으로 이어진 겁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발견, 급전, 파토스를 통해 하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바로 연민과 두려움입니다. 관객에게 호감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민이나 두려움을 줘야 하는 것이죠. 이때 연민이란 부당하게 불행을 겪은 사람을 보며 느끼는 것이고, 두려움이란 나와 비슷한 사람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감정은 ‘공감’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연민과 두려움으로 압축된 정서적 공감과 감동이야말로 비극이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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