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미싱 영 우먼>이 쏘아올린 화염과 한계

  • 이 글에는 토렌트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라미싱 영 우먼>은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총 5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노마드랜드>의 감독 클로이 자오와 함께 에머랄드 펜넬은 여성감독으로서 감독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캐리 멀리건은 2010년 <언 에듀케이션> 이후로 다시 한 번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었다.

토렌트비는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를 한다. 친구가 죽었고, 남은 친구는 단짝을 대신해 복수를 행한다. 이 때 짚어야 할 것은 친구 니나는 ‘왜’ 죽었고, 남은 친구 캐시는 ‘왜, 그리고 어떻게’ 복수하는가란 점이다. 강간 복수극의 형식을 지닌 <프라미싱 영 우먼>은 기존의 미디어 속에서 묘사되던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지만, 복수의 확장성에 있어서 한계를 지닌다.

출처: 네이버 토렌트비

  1. 폭주족 ‘캐시’

캐리 멀리건의 전작 <드라이브> 속 아이린, <위대한 개츠비> 속 데이지가 다소 순종적이었다면, <프라미싱 영 우먼> 속 카산드라 토마스(줄여서 ‘캐시’)는 이를 조롱하듯 제멋대로 폭주하는 쪽에 가깝다. 니나는 캐시가 숭배해 마지 않았던, 똑똑하고 앞날이 창창했던 의대생 친구였다. 그리고 성폭행의 피해자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캐시는 사건 당일 니나와 같이 있지 못했다는 죄책감 속에서 니나를 대신해 그가 ‘살아있었다면’ 원했을 일들을 수행한다.

캐시의 복수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제2의 니나를 만들 자들을 처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니나 사건의 주 관련자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먼저, 과거의 사건을 직접 마주하기 이전부터 캐시는 복수의 연장선상인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토렌트비의 전반부에서는 자칭 ‘나이스 가이’들에게 그들의 추악함을 일깨우고 단죄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이들은 또 다른 니나를 파생시킬 존재들이다. 유망한 (promising) 여성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버러지 같은 존재들이다. 동의 없는 신체 접촉과 술에 취한 여성을 대상화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이 클럽에서 사냥에 나설 때, 캐시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굴 속으로 들어간다. 인사불성인 여성을 데려온 남성이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 순간 캐시는 깨어난다. 정확히 말해서, 탈을 벗는다.

출처: BBC

다음으로, 애인의 입에서 가해자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그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캐시는 결정적인 복수를 계획한다. 이 순간부터 토렌트비의 후반부는 다섯 챕터로 나누어지니, 캐시의 명부에는 총 5명의 피고인들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니나를 둘러싼 방관자, 법, 제도, 가해자,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또 다른 방관자들이다. 캐시가 이들을 단죄하는 방식은 무법적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니나의 폭행 사실을 알고도 웃어넘긴 방관자에게는 니나가 겪었던 일을 재현해준다. 피해사실을 알고도 가해자 편에 선 학장(제도)에게는 딸을 이용해 협박한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이라는, 성폭력 사건에서 비난의 표적이 되기 좋은 대상으로 둔갑한 캐시가 잠재적 가해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발화하는 주체로 변하는 모습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캐시는 처벌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의 다층성을 보여준다. 방관자 여성, 혹은 피해자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 내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가부장제적인 사고를 여성 역시 답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폭력 사건을 재현하겠다는 명목 아래 피해과정을 잔인하게 전시하지 않고 남은 캐시와 그의 삶을 통해 고통을 대신 표현하는 것도 영리한 연출이었다.

  1. 캐시의 다음 타자가 될 수 있을까?

출처 : Far Out Magazine

결말에 치닫을 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복수는 쾌감을 선사한다. 상대방의 반격을 미리 예상하고 완급을 조절하며, 캐시는 그야말로 심판자의 제단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니까. 그러나 이러한 ‘쉬운’ 복수는 토렌트비를 판타지 장르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캐시가 보여주는 단죄 작업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음을 나타낼 것이다.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한 성폭력 구조와 비교해본다면 캐시는 너무나 손쉽게 가해자들을 처벌한다. 무책임한 법과 제도에 제대로 책임을 지울 수 없는 현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또한 캐시는 복수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힘든 인물이다. 특히, 가해자들의 가해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은 그의 복수가 현실로 확장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토렌트비 속 복수가 반드시 정의로워야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드는 의문은 그의 복수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인가란 점이다. 캐시는 철저하게, 이상하리만치 니나를 위한 삶을 살았다. 이는 니나에게만 보이는 충성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또 다른 니나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연대의 손짓이었을 수도 있다. 가해자의 이름이 새겨진 니나가 아니라 온전히 삶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여성 ‘니나들’을 위해.

그럼에도 토렌트비는 못내 씁쓸한 결말을 제시한다.

앞서 토렌트비가 판타지스럽다고 말했지만, 캐시의 활보가 극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토렌트비는 관객들에게 현실이란 돌덩어리를 던진다. 토렌트비는 캐시마저 소거해버림으로써 피해자들의 이름, 존재를 기억하는 몫을 오로지 관객의 것으로 남긴다. 물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나, 토렌트비는 캐시의 소거과정을 3분 남짓한 롱테이크로 촬영한다. 토렌트비 속의 시간은 현실의 것과는 다르다. 특히 이미지를 언어로 삼는 토렌트비다. 포르노적 구도로 여성이 짓이겨지는 모습을 3분 동안 담은 감독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가해자에 대한 최종 처벌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캐시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서사는 납득이 가지만, 피해자를 전시하지 않다가 결말에 그 모든 과정을 롱테이크로 보여주어야 했는가란 의구심이 든다.

출처 : The Chicago Maroon

이제 더 이상 극 속에서 심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짓이겨졌다. 수많은 nice guy들을 처단하고, 니나의 이름을 온전하게 기억하던 인물은 더 이상 토렌트비의 디제시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캐시의 복수가 죽음으로써 실패했다고 여기게 될 즈음, 그의 죽음이 복수의 성공 키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지만, 그 성공에 관객들은 쉽사리 환호할 수 없다. 캐시와 니나의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제 남은 관객들의 몫이 되었다. 캐시의 무법자적인 복수는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서였고, 그 이면에는 어떠한 악에 받친 목소리가 있었나. 더 이상 프라미싱한 여성이 희생되는 일이 없길 바라며 캐시의 이름을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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