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그는 1분을 가리키면서 영원히 날 기억할 거라고 했어요…”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을 찾아간다. 그는 그녀에게 이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결국 ‘수리진’은 ‘아비’를 사랑하게 되고 그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구속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아비’는 그녀와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 ‘수리진’은 결혼을 거절하는 냉정한 그를 떠난다. 그녀와 헤어진 ‘아비’는 댄서인 ‘루루’와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도 역시 오래 가지는 못한다. ‘루루’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아비’는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다. 한편, 그와의 1분을 잊지 못한 ‘수리진’은 ‘아비’를 기다리는데…

토렌트 <아비정전> 리뷰

왕가위 감독 스폐셜로 재개봉한 토렌트 <아비정전>을 리마스터링 4K 버전으로 관람하였습니다. 워낙 장국영의 매력이 가득한 왕가위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당시 중화권 토렌트가 친한 편이 아니었기에 이번 재개봉을 통해 토렌트 <아비정전>을 마침내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 미장센으로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감성적인 결로는 저와 굉장한 합이 맞는 편인데 작품적인 친절함은 저와 상극의 케이스이기도 해요. 굉장히 토렌트가 시크한 편이긴 한데 이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무수하게 좋아서 반짝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반짝거림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워낙 <아비정전>은 토렌트 촬영에 대한 에피소드와 결말의 양조위의 출연 정도는 알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비의 그 발 없는 새와 같은 방랑자의 객기 혹은 자유가 참 청춘처럼 영글게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특히나 토렌트 초반의 수리진과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장국영은 그야말로 넘사벽의 나쁜남자미가 뿜어져 나오네요. 그럼 저의 토렌트 <아비정전> 리뷰를 지금 시작합니다.

헐왓챠에 왕가위 리마스터링

4K 리마스터링으로 돌아온 왕가위, 왓챠 SVOD 독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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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겁의 너와 나의 1분

왕가위 감독의 토렌트를 지난겨울부터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중경삼림>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통해 만나며 느낀 건 그의 화려한 듯 클래식한 미장센과 음악이었습니다. 꼭 토렌트를 보고 난 후에 OST를 한동안 찾아들을 정도로 토렌트 음악은 거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닌가 싶을 온통 마음을 내어주고 말았네요. 여기 <아비정전> 역시도 그랬습니다. 클래식을 넘어서는 아련함으로 가득 찬 색감과 그 위를 수놓는 장국영과 장만옥의 모습은 그림같이 빛이 납니다. 반짝반짝.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 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시와 같은 대사와 그 얼굴을 보면 당연하게 또 생각이 나는 조각 같은 얼굴에 곱게 빗어 넘긴 머리. 수리진은 그렇게 발 없는 새라 불리는 아비에게 젖어갑니다. 그리고 찰나의 1분이란 시간이 어떤 이에게는 영겁과도 같은 1분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기에 이르죠. 사랑은 그렇게 찰나로 시작되어 영겁처럼 이어지나 봅니다.

이 남자를 구원하소서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으시다면 나도 내 얼굴 보여주지 않는다.”

아비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가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휩싸이게 되고 진짜 엄마를 찾으려는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엄마와 늘 대화의 각을 세우기에 이르죠. 그러니 삶은 피폐와 방관으로 나락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 역시도 함께 안주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늘 어지럽고 불안하고 떠날 태세를 하고 있는 신경을 곤두세운 한 마리 새와 같이. 그럴수록 여자들은 아비에게 저 집착합니다. 수리진과 결혼 문제로 헤어진 후 만난 댄서 루루 역시도 언제 떠날지 모를 아비의 태세에 늘 불안해하니까요. 결국 그는 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납니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자신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고 아비는 그렇게 또 등을 보이며 위태롭게 그 집을 나와야만 했습니다. 샐쭉거릴 열다섯 사춘기의 남자아이처럼 나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만이라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면서.

그렇게 늘 그의 생은 외롭고 끝에 서 있습니다. <아비정전>이란 아비의 일대기를 이야기한다지만 그의 일대기는 오로지 쓸쓸한 그림자만 가득했구나 싶어서 언제 죽어도 나는 상관없다는 아비의 그 말이 묘하게 허공을 가르고 내 마음도 가르며 부지불식간에 퍼석퍼석하게 만들어버리네요.

아득한 쓸쓸함의 공기로 채운 <아비정전>

자유롭고 싶은 쓸쓸한 영혼이었을지 몰라요. 언제든 새장을 박차고 나갈 예민함으로 곤두선 한 마리 새였지만 어쩌면 웅크리고 앉아 자기도 모르게 날기 위해 숨을 가만가만 모으며 에너지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수리진을 찾아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흘리던 눈빛이, 축축이 젖어 있을 것만 같은 침대 위에서 마른듯한 담배 한 모금을 쭈욱 빨아들이는 모습도, 하얀색 런닝 차림으로 거울 앞에서 찰나의 맘보춤을 추던 모습도, 필리핀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는 아무런 소득 없이 등을 보이며 휘적거리며 걸어 나오던 모습도, 어느 낯선 타국의 허름한 모텔에서 알게 된 선원이라는 남자와 싸구려 와인을 나눠마시던 표정도 그리고 허망하게 기차에서 생의 외롭던 끝자락을 퍼덕거리던 모습까지. 장만옥의 앳띤 모습도 유가령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도 유덕화의 젊음도 여기 <아비정전>에서 아비였던 장국영과의 색깔이 더해지며 그 폭발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는 장국영의 토렌트였습니다.

실로 시리즈를 계획 중이었던 왕가위 감독은 엔딩에 양조위를 등장시켜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려 했지만 홍콩에서 흥행 실패로 인해 그 시리즈는 중단이 되어 결말에 대한 호불호가 컸다는 에피소드도 있죠. 그럼 저의 토렌트 <아비정전> 후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헐왓챠에 왕가위 리마스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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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왓챠에서 극장에서 ‘왕가위 스페셜’을 고스란히 옮겨 ‘헐왓챠에 왕가위 스페셜展’ 이 시작됩니다. 3월 17일 오후 3시에 릴리즈 될 이 스페셜은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4K <화양연화>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2046> <타락천사> <동사서독> <열혈남아> <일대종사> 그리고 <아비정전>까지 시청이 가능합니다. 왕가위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신 분들, 궁극의 감성 로맨스에 굶주리신 분들 모두 왓챠로 달려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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