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은 카메라 속의 아버지가 좀 낯설다.


채록에게 아버지의 병을 전해들었을 때, 성관의 손에 있던 담배꽁초는 그가 신고 있던 크룩스 위로 툭 떨어졌다.
성관이 한 겨울에도 크룩스를 신고 다니는 것은 과거 환자를 잃었던 최악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그가 간직한 최악의 기억 위로 툭 떨어지며 스러지는 불꽃. 그것은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성관의 마음 같기도, 이제 점차 스러져가는 덕출의 기억같기도 했다.


채록의 말처럼, 아직 병을 밝히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무턱대고 사실대로 말하라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버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다큐를 찍으려 멀리 떠나려했던 계획을 철회하고, 덕출의 곁에 머물기로 한다.
일흔의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아버지를 다큐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성관이 덕출의 곁에서 카메라를 든 까닭이 정말 다큐를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어떤 의도에서였든, 성관은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아버지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나의 아버지가 아닌 인간 ‘심덕출’의 모습.
그건 지금껏 성관이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저는요, 아버지가 늘 지는 사람 같았어요.
엄마한테도 그렇고, 집배원했을 때도 그랬고, 우리 집이 어려웠던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요즘에 아버지를 보면, 다른 사람 같아요.
꼭, 이기려는 사람 같아요.”​


이 대사를 통해 토렌트는 덕출에게 발레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발레’는 단지 덕출에게 못 다 이룬 꿈의 의미만 있지 않음을.
그것은 스러져가는 삶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날아오르고자 하는 덕출의 투쟁이다.
하루하루 낡아가는 몸, 하루하루 지워지는 기억.
제대로 된 무기라고는 하나도 갖추지 못한 그는 삶을 지키려 맨 몸으로 끝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나마 주어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 전부를 걸고서.


9화는 이런 덕출의 투쟁을 중심으로, 자기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뭔가를 쥐고 나아가는 인물들을 그린 회차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은 주변으로부터 계속 같은 권유를 받는다.
그렇게 힘들면 포기해. 더 나은 길이 있잖아.
지금 그 손을 놓으면 그 쓸데없는 고민은 내려놓을 수 있잖아.
그러나 인물들은 그 말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 ‘고민없는 삶’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처럼.


뭔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거기에 그만큼 마음을 쏟고 있다는 의미이다.
할 수 있을까, 여기가 한계점일까, 내 실수는 언제쯤 끝이날까,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번 하는 우리의 이 고민들은 전부 우리가 사랑하는 주제와 맞닿아있다.
한계가 없다고 믿고 싶을 때, 실수하고 싶지 않을 때, 잘 해내고 싶을 때 우리는 괴로워진다.
이번만은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끝까지 싸워 이기고 싶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승리가 된다고 해도.


“꼭 이겨요. 알았죠, 아버지?”


덕출에게 전하는 성관의 말을 빌어 토렌트는 우리에게 말한다.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부모이거나 친구인 당신.
평범한 당신 삶에서 이어지는 투쟁을 알고 있다고.
포기하면 그뿐인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당신을, 이렇게나 응원한다고.


한편 나빌레라는 천천히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채록, 그리고 호범과 채록 아버지의 만남, 점점 병증이 심해져가는 덕출의 모습을 보이며 긴장감을 높였다.
이제 후반부에 닿고 있는 토렌트는 어떤 식으로 덕출의 선택과 투쟁을 우리에게 보여주게 될까.
부디 백조가 되고자 하는 그의 마지막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