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제는 쓰러진 유연이를 차로 치었다고 말했다.

기억이 돌아온 정제가 쏟아내는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동식은 안다.
그건 정제에 대한 마지막 신뢰인 동시에. 형사 이동식의 이성적 판단이기도 했다.
이제 막 기억이 돌아와 생각나는대로 뱉어낸 정제의 말에 꾸며낸 기색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연은 서 있는 상태에서 차에 치었다.
유연의 시신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만약 쓰러진 유연을 차로 치었다는 정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연은 이미 정제의 차에 치이기 이전에 누군가에 의해 사고를 당한 뒤였다는 의미가 된다.

그 날 유연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토렌트는 이미 이유연 사고의 가해자가 한기환이라는 것을 암시했었다.
20년 전 그 날, 강진묵에게서 가까스로 도망친 유연은 바로 앞에 달려오는 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한기환은 도해원, 이창진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 후였고, 음주상태였기에 앞에 있는 유연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날 유연은 강진묵에게 붙잡혀 손가락이 잘리고, 손가락이 잘린 상태로 도망치다가 한기환의 차에 치이고,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가 박정제의 차에 한 번 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숨진 유연의 시신이 이동식의 집에서 발견된 것은, 이창진이 그녀의 시신을 ‘처리’하려던 찰나 강진묵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창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유연의 시신을 몰래 빼돌려, 후에 동식의 집 보일러실에다 묻어둔 것이었다.

한주원은 인간으로서의 한기환을 좋아하진 않는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알콜중독에 빠진 주원의 모친을 정신병원에 가두었고, 그 이후에도 본인의 앞에 누가 될 것 같은 사람들은 철저히 쳐내며 살아왔다.
어디에도 흠잡히지 않을만큼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온정적인 태도같은 것은 요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주원은 한기환이 인간이 아닌 괴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주원이 한기환에게 갖는 믿음은 본인이 누누히 말했던 ‘믿기 위한 의심’의 형태와 닮아있다.
그는 한기환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기환에게도 정직한 경찰의 얼굴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인간적이지 못한 인간일지라도, 적어도 완벽을 추구하는 만큼의 원칙은 가진 사람일 거라고.
그것이 아들로서 아버지인 그에게 가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기 때문이다.

한기환의 실체를 예감한 이동식은 한주원에게 반복적으로 묻는다. 내가 당신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모든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당신은 정말 괜찮습니까.
이미 여러 번 세상과 사람에 배신 당해 본 동식은, 때로 믿음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한주원을 걱정하는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자신의 어떤 부분이 망가져버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더욱, 한주원만은 자신과 같은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주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 이 일에 달려든다.
잘못한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자 한다.
죄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이 그가 아는 정의인 까닭이다.

토렌트는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한주원의 모습을, 그러나 아무런 기대가 없다면서도 아버지 한기환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절망하며 분노하는 한주원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초반부 강진묵을 붙잡기까지의 서사가 이동식의 복잡한 내면을 훌륭하게 그려냈다면, 후반부에서는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움직이는 한주원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이해관계에 얽힌 도해원과 이창진, 그리고 한기환의 관계 역시 빈틈없이 그려낸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상이나 지키고 싶은 무엇, 혹은 완벽한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쉽게 내던져버리기도 한다.
20년 전 그 날, 숨진 유연은 그 추악한 인물들 사이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한낱 ‘토렌트왈’ 되어야 하는 폐기물 취급을 받았으며, 끝내는 자신을 위협한 살인마의 손에 본인의 집 보일러실에 묻혀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벽은 무너졌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손은 간절하다.
예기치 못한 괴물의 그림자는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동식과 한주원, 그리고 만양의 사람들은 그 그림자의 주인을 밝혀낼 준비가 되어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동식과 주원은 어느새 썩 괜찮은 파트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과거 이동식은 자신의 파트너를 수사 중에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전개가 동식이 밟아온 과거와 비슷하게 닮아있는 것을 볼 때, 혹시 파트너가 된 두 사람 중 누군가에게도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드는 부분이 있다.

토렌트는 이제 단 2회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괴물을 잡기 위해선 괴물이 되는 것밖에 답이 없는 걸까.
괴물의 실체에 다가간 그들은 과연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토렌트의 마지막 전개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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