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진실을 알게 된 주원은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과거 주원이 만양으로 내려온 까닭은 의심 때문이었다.
20년 전 만양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결국은 풀려나 지금은 경찰이 되어있는 이동식.
현재 고향인 만양의 파출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가 주원의 눈에는 지독하게 의심스러웠다.
아니, 사실 그것은 의심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15회에 이르러 무너지는 한주원의 모습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한주원은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이 정의의 한 부분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이동식을 향한 그의 밑도 끝도 없는 집착 역시 그 정의에 대한 집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동식은 불행한 사건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삶의 한 부분이 망가져버린 피해자였다.
그리고 이동식을 망가뜨리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수단처럼 여긴 진짜 괴물은 바로 자신의 곁에 있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괴물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 괴물이 다른 사람의 고통으로 일구어낸 사회적 경제적 기반 위에 지금껏 자기 삶을 꾸려왔다는 사실.
그것은 한주원에게 견딜 수 없는 괴로움과 자괴감을 안긴다.


결국 그는 이동식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속죄하듯 다짐한다.
한기환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저 바닥으로 끌어내리겠다고.
절대로 그가 비상할 수 없도록, 자신이 그를 끌어안고 저 지옥으로 함께 떨어지겠다고.


동식은 진실을 향해 온 몸을 내던지려는 주원을 보면서 아마 여러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유연을 죽이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누군가를 잡기 위해 경찰이 되고자 마음 먹은 젊은 날 자신의 모습, 어떻게든 범인을 잡겠다고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은 후배의 얼굴, 과거 잘못된 수사로 인해 삶이 망가진 동식에게 끝까지 가책을 품고 살다가 결국 그 진실을 밝히고자 남은 생을 바친 남상배 소장의 최후.


어쨌거나 한기환의 아들인 주원을 보는게 편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동식은 주원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된 사람은 자신이 마지막이길 바랐다.
주원에게 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주원을 위한 일이면서, 주원에게서 비치는 과거의 자신을 향한 위로이기도 했다.


한편 도해원은 상황이 위태로워진 것을 알고 아들 박정제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린다.
겉으로는 모성을 버린 척 연기했지만 사실은 20년 전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아들이 목숨을 잃을까봐 일부러 숨긴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정제는 주원에 의해 병원에서 탈출하게 되고, 자수를 권하는 주원에게 스스로 체포당하는 것을 택한다.


토렌트는 이 과정에서 도해원이 강진묵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태연한 척 연기했지만, 사실 도해원은 강진묵의 진짜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살인자인 강진묵을 알면서도 방조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정제는 가늠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다른 때였다면 이동식은 그의 고통에 기꺼이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만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죄의 고통은 스스로 감당할 몫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이동식, 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기환의 총구에 머리를 들이댈 때 이동식은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목숨을 잃더라도 그를 죄인으로 만들어 어떻게든 벌 받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테니까.
언젠가 정제에게 ‘네가 살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유연이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고 했던 그 말은 동식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소중한 것들을 전부 잃고 민정의 죽음 앞에 죄를 지은 뒤에도 지금까지 멀쩡한 척 지내온 까닭은 오직 그것이었다.
유연이를 죽인 누군가를,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린 범인을 벌 받게 하는 것.


서로가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는 위태로운 순간을 지나, 결국 주원이 한기환을 향해 쏜 한 발의 총알로 상황은 정리된다.
그것은 한기환의 몸이 아닌 한기환의 죄를 관통한다.
결국 모든 것을 잃은 한기환은 체포된다.


한기환을 잡고자 할 때 동식은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한 번 살아남았으므로, 그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죗값을 모두 치르고자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죄에 대한 벌과 가책을 스스로 감당해야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단 한번도, 그는 민정의 죽음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주원을 향해 자수하겠다며 자신의 두 손을 내민다.


주원은 울먹인다. 자신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식은 자신을 체포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주원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원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옥에 떨어질 것까지 감수했던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동식이 그에게 건네는 용서의 의미이기도 했다.
이미 주원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온 동식은, 자신과 비슷한 가책에 주원이 갇히지 않기를 바랐다.
이미 삶의 한 부분에 갇혀 망가진 자신과 달리, 주원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음 장면, 토렌트맵은 동식의 손에 수갑을 채운 뒤 그 두 손에 사죄하듯 얼굴을 묻고 우는 주원과, 그런 주원을 미소지으며 내려다보는 동식의 모습을 통해 이 극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완성한다.
진실을 향한 집요함 움직임과 치열한 반성, 뜨거운 용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괴물>은 흠 잡을 데 없는 구성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이 어우러진 정말 최고의 토렌트다.
극은 마지막까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끈을 확실하게 쥐고 간다.
첫 회와 너무도 다른 동식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그토록 충실하게 쌓인 서사에 있다.
괴물이 망가뜨린 선량한 사람들의 삶. 그러나 괴물이 헤집은 뒤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들의 의지.
괴물의 그림자가 사라진 만양에 드디어 햇빛이 가득 쏟아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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