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렌트라기 보단 6부작 드라마인데, 하나의 구성인 것처럼 개연성이 짙어 몰입감은 거의 이어지는 토렌트 한 편 수준인 드라마. HBO와 BBC의 공동 제작 드라마, <이어스 앤 이어스>이다.

개요

Years And Years (2019)

장르 : 드라마 / SF / 블랙 코미디

감독 : 사이먼 셀란 존스

출연 : 엠마 톰슨, 러셀 토비, 제시가 하인스

로튼 토마토 지수 : 90%

줄거리

질주만 하던 어느 날,

모든 게 터져 버렸다.

이 드라마의 가장 도드라지는 성격이라고 하면 가까운 미래를 현실감 있게 예측하여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현재에도 상존하는 다양한 갈등들이 고조 되고, 해결책은 구하지 못한 채 곪아 터져 버린 몇 년 후를 빠른 템포로 그려낸다.

첫 줄 왼쪽부터 대니얼, 이디스, 로지, 스티븐은 형제 관계 / 맨 오른쪽 베서니(스티븐의 딸) 둘째 줄 왼쪽부터 루비(스티븐의 딸), 뮤리엘(스티븐의 어머니), 셀레스트(스티븐의 아내)

라이언즈 가의 대가족들은, 이런 사회 속에 살아 가며 세대마다, 개인마다 다양한 문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드라마는 평범한 듯 독특한 이 가족 일행을 통해 이 거대한 갈등 상황을 대면하는 무력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 준다.

머지 않은 미래인 2024년, 중미 관계는 악화 될대로 악화 되어 제 3차 세계 대전이 목전에 왔다는 설이 돌고 있다. 그러던 와중, 미국이 중국의 인공 섬 ‘홍샤다오’에 핵폭탄을 투하 하며 전국에는 사이렌이 울리고, 전시를 방불케 하는 패닉이 영국 전역을 뒤덮는다.

가족들은 어머니 뮤리엘의 생일 파티로 한 데 모였을 때 이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한편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디스는 환경 운동가로써 홍샤다오 폭격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면서 그 영상을 촬영해 전 세계에 경각심을 주고자 한다. 뉴스에 출연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한다.

“I wonder … what happens next?”

미쳐 돌아 가는 세상에 여러 문제들이 곪아 터지고 있지만 하루 하루 저 살기에도 바쁜 미래인들은 저 먼 데서 터진 핵폭탄보다 당장 오늘 아침의 귀찮은 분리 수거나 주차 공간으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더 큰 문제일 뿐이다.

오프라인 은행에 몰려든 사람들과 그 틈의 스티븐

여러 악재들의 여파로 세계 증시가 급락하게 되고, 100% 전산 시스템으로 운영 되던 은행들의 서버가 단체로 마비 되며 모든 은행이 뱅크런을 당하게 된다. 하필 그때 집을 팔고 모든 현금을 은행에 넣어 두었던 스티븐 네 가족은,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다.

빅토르와 대니얼 라이언스 (러셀 토비 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다수의 난민들이 영국으로 유입 된다. 난민 입주국 공무원이자 동성애자였던 대니얼은, 그곳에 공무를 수행하러 갔다가 빅토르를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난민 수용에 굉장히 보수적이었던 정부의 까다로운 정책으로 인해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 이윽고 빅토르는 본국으로 돌아가 동성애자로서 받아야 할 처벌을 받게 될 상황에 이르게 된다.

트랜스 휴먼 불법 시술을 받으려 친구를 설득하는 베서니

한편 젊은 층들 사이에서 ‘트랜스 휴먼’이라는 기술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홍채 혹은 혈관 등에 미세 전자 기기를 이식하여 눈을 깜빡이면 사진이 찍히고, 손으로 전화 모양을 만들면 전화를 받을 수 있고, 어떤 빈 책상에서든 가상 키보드로 타자를 칠 수 있는 등의 인체 기능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 기술을 신봉하는 이들의 최종 목적은, 스스로의 뇌를 데이터로 저장하여 ‘신체’를 버리고 컴퓨터 속에서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다.

마스크 이모지로 표정을 가리고 대화하길 거부하는 베서니

베서니는 면대면 대화보다 매체를 통한 소통에 익숙한 세대였다. 그래서 트랜스 휴먼에 관련된 얘기로 부모님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하루 종일 음성을 변조하고 이모지를 띄워 놓고 생활하기에 이른다.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하든 전자 기기와 소통을 하는 듯 정해진 대답만이 날아 올 뿐이다.

이외에도 영국 내 곤충 개체 수가 80% 감소하고 그에 따라 새의 개체 수 역시 50% 감소하게 된다. 80일 간 비가 내리는 이상 기후가 발생하기도 하며, 흡사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상하게 하는 ‘원숭이 독감’이라는 것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자극적인 언변가, 비비안 룩

TV 토론에 나와 시원한 언변을 보여주는 비비안 룩(엠마 톰슨 분)

라이언즈 가족이 사회적 변화의 파도에 거세게 얻어 맞는 동안, 기업가 출신 극우 성향 정치인 비비안 룩은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 민중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파고든다.

TV 토론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는 모르겠고, 신경 조또 안 쓴다. 그저 내 집 앞 쓰레기 수거만 잘 되면 좋겠다.” 라는 식의 시원시원한 언변으로 즉각적인 관심을 이끌어 낸다. 국내 상황이 이런데다 이미 UN에서도 탈퇴한 마당에, 국제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더 이상 귀에 들어 오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선동적인 언변으로 그녀의 정당 ‘사성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이 동률을 이루는 의회에서 15석을 차지하며 원하는 정당에게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실권 정당의 대표로 급부상 한다.

영국 총리에 당선 된 비비안 룩

2027년, 투표 의무화에 따라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되고, 그 투표에서 비비안 룩은 영국 총리로 당선 된다.

갑자기 영국 도심 곳곳에서 방사능 테러가 일어 나며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속출했을 때도, 비비안은 방이 2개 이상의 방이 남으면 ‘침실법’을 적용하여 이재민들과 함께 살도록 하는 파격적인 법안을 제시한다.

로지와 비비안 룩

그리고 로지가 살던 동네의 범죄율이 높아지자, 지역을 모조리 통틀어서 우범 지대로 지정하고 통금 시간을 정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강경한 전체주의적 정책들을 쏟아 낸다. 비비안의 사성당에 매료 되어 그녀를 강력히 지지하던 로지도 이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게 된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이상한 소문마저 떠돈다. 이디스는 그 소문을 쫓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지만, 연관 검색어가 모두 막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정부가 이 일에 개입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트랜스 휴먼이 된 베서니와, 난민 구금소에 갇혀 있다 정보를 흘려 들은 빅토르의 도움으로 소문의 정체가 ‘어스트와일’이라는 장소임을 밝혀 낸다. 어스트와일에 대한 조사를 하던 이디스는 깜짝 놀라고 만다. 어스트와일은 난민, 이민자, 반정부 성향의 시민들을 잡아 두는 구금소였던 것이다.

수용소 근처에는 거대한 ‘블링크(전파를 차단해 전자기기를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기계)’ 들이 설치 되어 있어 내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

이디스는 파격적인 계획으로 그 수용소의 실태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음식 납품 업체로 위장한 이디스와 동료들이 어스트와일에 잠입해 블링크를 무력화 시키고 구금소 철장을 열어 풀려난 이들과 함께 어스트와일의 실태에 대한 영상을 찍는다.

2030년이 되던 해, 이 사건에 책임을 물어 비비안 룩은 재임 도중 살인 혐의로 체포 되었고, 비비안에 의해 탄압 받아 방송을 중지했던 BBC가 다시 문을 연다.

결말 부분에서 홍샤다오 핵폭탄 투하 때 다량의 방사능에 노출 되었던 이디스가 결국 시한부 선고 받은 날짜에 임박하게 된다. 결국 가족들은 그녀의 뇌를 디지털에 저장하여, 진화한 기가자니(?) 같은 기능을 하는 세뇨르를 통해 그녀와의 소통을 시도하며 시리즈는 마무리 된다.

관전 포인트 & 리뷰

한 번 쯤 생각해봤던 문제들. 극단적 성향의 폭군 정치인, 세계 전쟁을 비롯한 국가 간 갈등, 환경 오염, 난민, SNS의 폐해, 동성애에 대한 집단 의견 갈등, 전자 은행의 문제점 등등.

‘이대로 놔둬도 괜찮으려나?’ 싶었지만, 눈 앞에 닥친 것도 겨우 헤쳐 나갈 만큼 빨라진 우리 삶의 속도 속에서 흔히 그런 장기적이고 거대한 문제들은 얼마 못 가 잊혀 지게 된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재미로 봐도 굉장히 빠른 호흡에 몰입하게 되지만, 그보다 더 깊게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때 주목하면 좋을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꼽아 본다.

실제 사건이 거론 된 부분과

실제 사건을 상징하는 부분

드라마 내에서 실존 인물에 대한 묘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성공,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이 국가 종신 지도자로 선출 되었다는 것,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의 사망,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 등.

실제로 일어 난 일들은 아니지만 실존 인물을 거론하여 가까운 미래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마치 드라마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에 현실감과 몰입감을 높여준다.

반면 직접적인 인용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향에 있어서 상징성을 띄는 메타포도 있는 듯하다. 비비안 룩과 사성당의 존재는 유럽 일부 국가 내에 있는 극우 성향의 정당의 행보와 비슷해 보인다. 혹은 기업가 출신의 극우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 홍샤다오는 실제로 있는 섬은 아니지만 그 섬의 존재와 핵폭탄 투하를 통해 어떤 작은 트리거 하나로라도 중미 관계가 극한으로 치달을 지도 모를 현 경쟁 상황을 깊숙히 찌르고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모여드는 라이언즈 가족

제목을 약간 의역해 보자면 ‘해가 가면 갈수록’, 즉 이디스의 말처럼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최악의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도대체 이 다음엔 무슨 일이 터질까” 하는 냉소적이고 허탈한 질문인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그것에 직격타를 맞고 있는 라이언즈 가족은 어찌 됐든 매년 뮤리엘의 생일만 되면 저마다의 늘어난 근심 걱정을 가득 안고서 모여 든다.

일련의 사건을 다 겪고 나자 능력 있는 가장에서 하루 아침에 전재산을 잃고 알바 6개를 뛰면서도, 불륜남이 되어 있는 첫째 아들. AI에 의해 직장을 잃은 회계사이자 남편에게 바람 맞은 며느리, 트랜스 휴먼이 되고 싶어 하는 손녀, 동성애자로서 밀입국 난민을 사랑하는 둘째 아들, 환경 운동 하느라 방사능에 피폭 되고 시한부를 선고 받은 큰 딸, 그리고 하반신 마비에 미혼모인 둘째 딸을 두게 된 뮤리엘.

사회적 꼬리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이 가족들은 여느 가정 못지 않은 사소한 갈등(고부 갈등, 부부 싸움, 세대 간 소통 단절, 유산 문제 등)으로 잦게 부딪힌다.

하지만 우연히 일상에서의 갈등들을 계기로 거대한 변화에 휘말리게 된다. 홍샤다오 영상을 촬영한 이디스, 트랜스 휴먼이 되어 어스트와일에 대한 정보를 찾는 베서니, 난민 빅토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난민 문제에 깊게 연루 되어 버린 대니얼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그렇게 일상의 가림막에서 벗어나 사회적 문제를 위해 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힘을 합치게 된다. 그런 라이언즈 가족의 모습에 집중하며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관전 포인트인 것 같다.

제 멋대로 리뷰

놔두면 곪아터져 버릴 것이 뻔한 이 문제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며 살아 왔던 건 아닐까.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 여러 일상이 파괴 되고 변화 되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수많은 잠재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또 파괴할 것인지에 대해 걱정한다.

범세계적인 갈등과 위기, 혐오와 차별들이 우리를 어떤 결론으로 이끌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경각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가끔 필요하다. 시리즈는 그런 시선에 날을 세워준다.

이 드라마의 장르가 정말 SF가 될까? 내겐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 돋는 재난 토렌트라고 느껴졌다. 이 드라마를 SF로 만들지 현실로 만들지는 우리의 숙제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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